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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박찬욱의 ‘스토커’는 할리우드에 보내는 예고편 (기사링크)
입력 : 2013-03-10 21:25:01ㅣ수정 : 2013-03-10 21:25:01
“당신은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자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소로서의 할리우드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 관심은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이 말은 박찬욱이 아니라 앨프리드 히치콕이 1939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레베카>를 찍은 다음 트뤼포의 질문에 한 대답이다. 아마도 이 말을 박찬욱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심정으로 몇 번이고 이 말을 새겨가면서 박찬욱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문제를 생각했을 것이다. <스토커>는 박찬욱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찍은 첫 번째 영화이다. (후략)
[책] 주성철,『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흐름출판, 2013.04.01
[ 추천사 ]
물론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장국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장국영과 함께 시작해서 그와 함께 4월 1일에 끝난 홍콩영화 포스트 뉴웨이브의 한 시대의 기록으로도 읽혀야 할 것이다. 종종 사적인 감정과 때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은 페이지에 출몰하면서 오로지 홍콩영화에 진정으로 애정을 바쳤던 이만이 가능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 영화 제목들을 불러올 때, 당신은 ‘잠시 잊었던’ 사랑 그리고 ‘지금 막 되찾은’ 사랑을 느낄 수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당신과 기억을 공유했던 이가 함께 음미하는 책이다. 그러니 부디 책을 읽기 전에 눈을 감고, 잠깐 우리 곁에 왔다가 떠나가기 전 미처 날개를 챙기지 못하고 창문 위로 날아가다가 그만 추락해버린 그 이름과, 그리고 그가 남겨놓은 영화 제목들을(적어도 10편) 소리 내어 불러보시길.
—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카페 느와르>
[ 온라인 서점 링크 ]
알라딘, 예스24
[기사]『KMDB』2013.02.26. 뢰검, 번개칼 (1969,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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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검, 번개칼 A Precious Sword, A knife of Thunder (1969, 임권택) (2013-02-26) [기사링크]
“이 以上 더 재미있는 劍客映畵는 없다!” <뢰검, 번개칼> 의 포스터 맨 윗줄에 자리 잡은 단 한 줄의 영화 소개. 검객영화라는 자기 지시. 약간의 유머. 나는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가 떠올랐다. 무언가 여기에는 우리를 낭패스럽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둘 사이의 서로 피할 수 없는 관계. 검객영화라는 말. 검객영화로서의 <뢰검, 번개칼>. 두 말이 서로 딱 맞게 겹쳐지지 않을 때 나는 맞지 않는 그 모서리를 생각하는 중이다. 영화를 보여주기와 설명하기. 영화를 둘러싼 이미지와 문장. 이때 저 문장이 호금전의 <용문의 결투>를 설명할 때와 지금 임권택의 <뢰검, 번개칼>에 가서 달라붙었을 때의 차이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단지 이쪽과 저쪽의 우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의 인용을 오해한 것이다. 왜 여기서는 저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말하자면 저 문장의 세계를 이 영화가 담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여기 따라올 때 영화는 저 세계에 관한 만족할 만한 주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두 개의 텍스트. (후략)
[기사]『KMDB』2013.02.06. 장안명기 오백화 (1973,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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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명기 오백화 Obackhwa (1973, 임권택) (2013-02-06) [기사링크]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잡초>(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후략)
[기사]『경향신문』2013.02.04.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나는 정말 스파이 영화를 본 것일까〈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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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나는 정말 스파이 영화를 본 것일까 (기사링크)
입력 : 2013-02-03 21:18:03ㅣ수정 : 2013-02-03 21:40:15
나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고 스파이 친구도 없다. 그러므로 스파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스파이에 관한 소설과 영화들에서 얻은 작은 지식들뿐이다. 종종 나는 스파이들의 세계가 그저 음모론의 일부로 꾸며낸 환상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든 다음 좀 더 많은 스파이 소설을 읽었다. 그런 다음 한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스파이는 운명이나 재능이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운명처럼 생각하거나 액션영화들은 종종 이걸 재능처럼 다룬다. 가끔 어떤 주인공들은 자신을 그렇게 믿는다. 이때 딜레마가 생겨난다. 왜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느냐는 것이다. (후략)
[대화]『아트나인』2013.01.29. “더 헌트” 관객과의 대화
[ 아트나인 홈페이지 ]
[ 아트나인 공식트위터 공지글 (link) ]
2013.01.24.22:08. 아트나인의 무비토크 시네마 구구. 1월 25일 20시 신지혜 아나운서, 1월 29일 20시 정성일 평론가, 1월 31일 20시 변영주 감독 + 김현민 기자. 모두 <더 헌트>로 진행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트나인 공식블로그 GV 후기 (link) ]
2013/02/05 10:34 <더 헌트> 대한민국 대표 감독, 평론가, 기자가 추천한다! 정성일 평론가, 변영주 감독 & 김현민 기자, 허지웅 평론가와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 현장 대공개!
[ 아트나인 공식카페 공지글 (link) ]
2013.01.25.16:15. “더 헌트”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정성일 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합니다.
[기사]『KMDB』2013.01.06. 인터뷰: 임권택과 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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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권택과 영화비평 (2013-01-16) [기사링크]
금지된 질문. 영화감독에게 영화비평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은 황당무계할 뿐만 아니라 사실 매우 무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간절하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나는 오랜간 종종 궁금하게 생각해왔다. 영화에 관한 개념의 활용. 비평이라는 거리. 하지만 우리들은 제대로 윤곽을 파악한 것일까. 항상 우리들을 사로잡은 불안. 혹시나 그저 뇌라는 스크린의 가장자리만을 맴돈 것을 아닐까. 물론 우리들은 쇼트와 씬을 이용해서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때로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는 요새. 어떤 힘 앞에서 느끼는 경이적인 감탄. 어떤 미로 앞에서 난처하게 길을 잃은 다음 이리저리 헤맬 때마다 느끼는 불안. 나는 내 동료들에게 걱정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가까스로 숨을 쉬듯이 질문하곤 했다. 혹시 당신은 표류하는 듯한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그렇게 물결에 흘러가듯이, 조수에 밀려가듯이, 항로를 잃은 것처럼, 두리번거리면서, 흘러가는 이미지를 본다. 어쩌면 최악의 순간을 맛볼 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경우. 자꾸만 밀려나서 어느 순간 해안가로 밀려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비평가가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멈추지 않고 일단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후략)
[기사]『한국영상자료원』2013.01.08.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 10편
[ 한국영상자료원 > 시네마테크KOFA > 프로그램 ]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 10편
올해도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한국영화 10편을 선정하였습니다. 영화평론가,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 관련지 기자 11인에게 “2011년 12월1일부터 2012년 11월30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중 여러분이 주목한 영화 10편은 어떤 작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영화 선정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정된 영화 리스트는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선정 작업에 참여해주신 영화평론가분들에 감사드리며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리스트를 공개합니다.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
<건축학 개론> 이용주
<남영동 1985> 정지영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돈의 맛> 임상수
<두개의 문> 김일란, 홍지유
<로맨스 조> 이광국
<밍크코트> 신아가, 이상철
<범죄소년> 강이관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줄탁동시> 김경묵
<터치> 민병훈
<피에타> 김기덕
* 동점으로 인해 12편이 선정되었으며, 공정성을 위해 선정위원 11인의 영화리스트와 순위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 참여해 주신 영화평론가: 김봉석, 김영진, 김혜리, 맹수진, 모은영, 문석, 이동진, 이용철, 정성일, 조영각, 허문영
* 영화의 상영포맷은 확정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기간: 2013.1.24(목) ~ 2.3(일)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관객과의 대화 (준비중)
[책] 류상욱,『류상욱의 익스트림 시네 다이어리』, 이숲, 2012.12.31
[기사]『KMDB』2012.12.24. 족보 (1978,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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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The Family Pedigree (1978, 임권택) (2012-12-24) [기사링크]
나는 두 편의 임권택의 첫 번째 영화에 관해서 썼다. 첫 번째는 그의 ‘두 번째’ 첫 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이고, 두 번째는 그의 첫 번째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이다. 이번에는 나의 첫 번째 임권택 영화를 쓸 차례이다. 말하자면 나의 마들렌의 시간. 부디 당신께서 잠시 동안 내가 되찾은 시간에 잠겨서 배움을 구했던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길. …. “혹은 그처럼 오랫동안 기억 바깥에 버려진 그런 기억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분해되어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조언. 그래서 나는 그것을 여기서 불러오려고 한다. “뿌리 깊게, 무형으로, 집요하게, 충실하게, 오래 동안 넋처럼 남아있어,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 환기하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종종 나는 동료들과 임권택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말고 문득 질문을 한다. 당신이 첫 번째 본 임권택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물론 이 질문은 자료를 거슬러 올라가서 기억을 더듬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의 정확한 판본은 당신이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고 본 첫 번째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는 것이다. 이미 내 주변에는 1962년 2월 4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이 질문이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그런 다음 공중에 매달린 시간.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