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말씀드리자면, 고양이를 부탁해를 너무나 좋게 봤던
한 사람으로서 정성일 씨의 영화평은 왠지 불만을 갖게 합니다.
시비를 걸고 싶은 측면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각각에 대하여 엄밀하게 시비하기에는
저의 관련 공부가 너무 모자란 것 같고, 일단 거칠게라도 말해보면 정성일
씨가 TTL 사이트에서 쓰는 글들에서 보여지는 식으로 슬라보예 지젝을 인용하면
참으로 고리타분하고, 교조적인 내용밖에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 섹스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20살의 여자애들의 선택 그 자체가,
도피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징계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되는 건가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포만감은 분명 아버지와 싸우는
그들만의 방식을 공유했다는 점도 분명 존재할 겁니다.
정성일씨가 이 영화에 대하여 이데올르기적 관점의 우려를 하는 것은
지젝의 헤겔리안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받아들이신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합니다.
왜 꼭 이상적 자아를 출발점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건가요?
저는 지젝의 너의 징후를 즐겨라, 라는 충고에 따라서
섹스에 관심없는 20살짜리 '여자'들의 선택에 대하여
기꺼이 별 다섯개를 주고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영화가 무진장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