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키노를 사보지 않지만 한 때는 키노에 빠졌었던 적이 있다. 키노에 나오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영화들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정말로 좋아할 만한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기도 했다.
과월호를 구하러 다니다가 한 번은 키노에 찾아간 적이 있다. 정문 앞에 서서
안을 슬쩍보니 정성일씨가 전화기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찌해야 할 지 몰라서
그저 뻘쭘하게 있었는데 정성일씨랑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전화기를 책상에 놓고
머슥하게 서있는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죠?" "저, 과월호..."
그는 담당자가 없다면서 직접 나를 데리고 키노가 쌓인 곳으로 데려갔다.
사무실 안에서는 몇몇 기자가 자고 있었고 장훈 기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과월호를 나에게 소개해주던 그에게 내가 물었다. "혹시 정성일씨 아니신가요?"
"예 맞습니다. 혹시 왕가위는 안 좋아하시나요?"
정성일씨는 며칠동안 머리를 안 감은 것처럼 약간은 깔끔치 못한 인상이었지만
목소리만은 명쾌했다. 과월호를 몇권 고르고 싸인을 부탁했더니 에디토리얼 부분에
싸인을 해주었다. 부록 포스터를 한가득 손에 안겨주고는
약간은 벙쩌있는 나를 출구로 안내하더니 멀리 나가지 않는다며 문에서 인사를 했다.
편집장에게서 과월호를 사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와 나는 확실히 취향이 다르다. 나에게 왕가위와 타르코프스키는 이해하기
힘든 영화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뭔가 느낄 점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점을 굽히지 않는 신념과 열정.... 그것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