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스미 시게히코, 『백작부인』, 문학동네, 2018.12.21. 추천사

작년 12/21에 출간한 “하스미 시게히코, 『백작부인』, 문학동네” 의 뒷표지에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추천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라딘 구매하기)


첫 문장을 읽자마자 중얼거렸다. 이건 요시다 기주吉田喜重의 영화 〈거울 속의 여자鏡の中の女〉의 첫 장면이로군.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소설을 쓴다기보다 마치 극장에서 다 찍은 영화를 바라보는 것처럼 대상을 건드린다. 그러면 나의 시선은 동사의 운동을 따라 끈적거리는 부사와 미끈거리는 형용사의 은밀한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때 스크린처럼 펼쳐진 종이 위의 문장들은 카메라에 다름 아니다. 카메라 만년필론의 외설적 버전이라고 할까. 아니면 좀더 격식을 갖추어 하스미 선생의 언어처럼 말한다면 표층의 에로티시즘에 아무리 다가가도 스크린 앞에서 좌절하는 한계 체험이라고 할까. 그렇게 환등기로 상영하기라도 하듯 희미하고 장대한 영화 목록이 펼쳐진다. 마치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이 미처 찍지 않은 다이쇼 시대 연작의 네번째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귀신에 홀린 듯이 읽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 대목을 마주쳤을 때 한번 더 중얼거렸다. 이건 허우샤오셴侯孝賢의 영화 〈해상화海上花〉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쓴 것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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