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의 〈바보선언〉 첫 장면은 영화감독 이장호가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감독이 죽어버리면 그다음 영화는 어떻게 되나요? 난장판이 될 것이다. 〈바보선언〉은 난장판의 영화다. 난장판이 왜 필요해진 것인가요? 두가지 대답. 첫번째. 1980년 5월 ‘이후’ 남도에서 흉흉한 소문이 풍문처럼 전해져왔다. 누군가는 비디오로 보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유언비어라고 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평화롭게 주말이면 프로야구를 응원하러 몰려갔다. 그리고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고 모두들 기뻐했다. 세상은 난장판이었다. 〈바보선언〉은 실험적인 영화가 아니라 (마술적인) 리얼리즘의 영화다. (후략)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나타났다.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1989년에 그렇게 한국영화사의 사건이 되었다. 배용균은 충무로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으며,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기술을 책으로 배웠으며(그는 미술을 공부했다), 시나리오를 혼자 쓴 다음, 소수의 스태프와 아마추어 배우들을 이끌고 몇해를 대구 근처의 절과 산속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으며,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거의 프레임 단위의 편집을 한 다음, 영화를 완성해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를 받았다. (후략)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아 <한겨레>와 씨제이(CJ)문화재단이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숨통을 죄는 시대의 폐부를 찌른 청춘영화의 기념비이자 선정위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 중 하나인 <바보들의 행진>(1975)을 첫번째로 소개한다. <한겨레>는 올해 말까지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100편의 작품을 하나씩 다룰 예정이다.
나쁜 장소, 나쁜 시간. 1975년 남한은 모든 것이 나빴다. 그해 초 또다시 유신헌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5월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었다. 방위세가 신설되었고, 민방위가 창설되었다. 사회는 냉전 상태가 되었다. 하길종은 자포자기가 된 것 같았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매일 술을 마셨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렸고, 만나는 사람마다 “피고는 할 말이 있는가”라고 시비를 걸었다. <바보들의 행진>은 야심적인 영화가 아니라 자기비하의 영화이며, 스스로를 학대하는 영화이며, 그러면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영화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들을 조롱하는 영화이며, 가련한 젊음을 위로하는 영화다. (후략)
영화사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부터 읽는다. 그리고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a Nation〉을 영화사상 첫 번째 장편영화라고 ‘잘못’ 쓴 책도 수없이 보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가의 탄생〉을 연출한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에 대해서 갑자기 나타난 감독처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영화를 연출했을 때 이미 그리피스는 39살이었다. 1908년에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탄생〉은 그리피스의 467번째 영화이다(이 목록에는 연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되지 않는 명단은 제외했다). 게다가 이미 그리피스는 1914년에 1시간 분량이 넘는 장편영화 〈베툴리아의 유디트 Judith of Bethulia〉를 연출했다.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정작 그리피스의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는 시네필을 만나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론대일 교환수 The Lonedale Operator〉(1911)에서 이미 능수능란한 리듬감을 보여주었고, 〈피그골목의 머스커티어들 The Musketeers of Pig Alley〉(1912)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좁은 골목에서 경찰들과 갱들 사이의 기괴한 총격전을 전개한다. 이미 그리피스는 거인이었다. (후략)
한국영화 탄생 100돌을 맞아 <한겨레>는 감독·제작자·평론가·프로그래머·영화사 연구자 등 다양한 영화계 전문가 38명이 참여하는 선정위원회를 꾸려 지난 석 달 동안 한국영화 100년을 대표하는 100선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1934)부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까지 최종 100편의 목록이 완성됐다. (중략)
정성일 평론가는 “1970년대 작품이 1960년대보다 적게 꼽힌 것만 봐도 1970년대 유신 독재 정권이 자행한 검열을 통한 탄압이 문화예술을 얼마나 훼손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짚었다. (중략)
정성일 평론가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배창호 감독은 1980년대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평가를 받은 감독이다.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으로 시작해 한 시대의 영화 정신을 이끌었던 감독으로, 그의 영화를 읽는 것은 시대를 읽어내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중략)
■ 어떻게 선정했나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기념해 100편의 영화를 뽑는 작업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크게 세 단계를 거쳤다. 우선 선정위원 38명에게 1919~2018년까지 개봉한 주요 영화 중 1200편의 목록을 제공한 뒤 각 100편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1200편은 지난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 100선’ 선정 당시 여러 요소를 고려해 뽑은 1000편에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해당 연도 흥행 1~20위, 국내외 영화제 초청·수상 기록, 영화잡지 <씨네21>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 1~10위에 포함된 작품 등 200편을 취합한 것이다.이어 선정위원 38명이 각각 선정한 100편 목록을 수합한 결과를 놓고 지난달 4~5일 이틀 동안 ‘1차 오프라인 회의’를 열어 위원별 선정기준과 적합성 등을 논의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318편의 2차 후보 목록을 작성했으며, 선정위원단은 이 목록을 토대로 또다시 각 100편의 영화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