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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론] 당신이 영화에 관해서 알고 싶은 모든 것, 그러나 물어보기 부끄러워했던 것들 (수강신청 페이지 링크)
기간 : 2013년 07월 11일(목) ~ 2013년 07월 14일(일) : 목,금,토,일
시간 : 13:00~18:00 | 5시간 * 4회
정원 : 정원 15 명
장소 : 서울 마포구 상암동 1593 미디액트 대강의실
수강료 : 200,000 원
강사 : 정성일
*. 2012년 10월 6일~10월 14일 동일 과정 안내 링크
카테고리 보관물: news
[기사]『KMDB』2013.05.15. 안개마을 (1982, 임권택)
[ KMDB > 영화지식 > 전문칼럼 > 임권택x101;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
안개마을 Village of Haze (1982, 임권택) (2013-05-15) [기사링크]
….(계속) 그리고 임권택은 <안개마을> 을 찍기 위해서 재빨리 오던 길을 돌아왔다. 다행히도 아직 첫눈은 내리지 않았다. “원래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요.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찍은 것도 속초에서 시작해서 삼척을 거쳐 도계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길을 찍고 난 다음 <안개마을>을 찍으러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런데 그냥 두 개가 서로 겹치면서 그게 그렇게 안 된 거요. 그때는 우수영화가 되면 외국영화 쿼터를 주었잖아요. 화천공사에서는 한편 찍으면 그걸로 우수영화 넣고 그게 되면 하나 수입할 생각이었는데 이제 날자가 막 쫓기고 그러니까 거의 포기하면서 박종찬 사장이 내가 있는 데서 들으라고 에이, 다 틀렸네, 그러면서 짜증을 내는 거요. 그래서 나도 오기가 생겨서 아, 그거 찍으면 될 거 아뇨, 하고 촬영에 들어간 거요. 처음엔 20일 정도면 찍을 거라고 생각했죠. 시나리오를 보면 계산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촬영을 12일 만에 마치고 눈이 내리는 걸 기다리는데, 거기서 눈이 오는 장면이 꼭 있어야 하는데, 그게 또 안 내리는 거요, 그냥 거기서 또 열흘을 논 거요. 날짜가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 그걸로 편집해서 검열을 넣고, 나중에 다시 내려와서 눈 내리는 장면을 보충촬영해서 바꿔 넣은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구태여 우회할 필요가 있을까. <안개마을>은 순식간에 찍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걸 느낄 정도이다. 영화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즉흥연주 하듯이, 마치 세션을 벌이듯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후략)
[기사]『VOGUE』2013.05.202호.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라는 신세계

[ VOGUE > STYLE > TREND > 컬처트렌드 ]
2013.05.202호.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라는 신세계
(VOGUE 기사 링크)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세 사람이(별다른 속 뜻 없이 그냥 훈민정음 순서대로) 그들의 경력을 막 시작하던 1995년, 그러니까 벌써 19년 전 이들은 신기하게도 한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심지어 나도 이 영화의 한 장면에 (우정)출연했다.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 간 송능한 감독의 데뷔작인 <넘버 3>라는 영화에서였다. 이 영화는 누가 주연이랄 것도 없이 마치 직소 퍼즐처럼 엮이면서 이야기는 파란만장하게 자유자재로 흘러갔고, 시종일관 가가대소하면서 세상이 삼류라고 마음껏 비웃고 있었다. 거기서 송강호는 단 한 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살인청부업 ‘불사파’의 대장으로 나오고, 최민식은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검사로 나오고, 한석규는 폭력배 무리들 속에서 넘버 3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가련하리만큼 안간힘을 쓰는 넘버 2로 나왔다. (후략)
[기사]『KMDB』2013.04.26. 나비품에서 울었다 (1983, 임권택)
[ KMDB > 영화지식 > 전문칼럼 > 임권택x101;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
나비품에서 울었다 Crying in a Butterfly’s Embrace (1983, 임권택) (2013-04-26) [기사링크]
보고 난 다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미 불이 켜진 다음이고 화면은 하얀 천을 드러내면서 영화가 끝났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극장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텅 비어있었다. 그때는 항상 그러했다.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처음 보았을 때의 어리둥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숨은 걸작을 발견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무언가 이건 난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족보>를 만든 다음, 이미 <짝코>를 만든 다음, 이미 <만다라>를 만든 다음에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안개마을>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연대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이 우진필름에서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찍을 때 화천공사에서 <안개마을>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충무로 식으로 말하면’ 두 편의 영화는 ‘가께모찌(掛持ち)’로 진행되었다. 한쪽에서는 <안개마을>의 촬영 로케이션 장소에 내려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강원도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지역을 돌면서 촬영을 시작하였다. (내가 알기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의 마지막 ‘가께모찌’ 영화이다. 나는 이 방법에 대해서 공격할 생각이 없다. 이건 상황이다. 한국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일정에 대해서 익숙해있었고, 많은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1982년 그해 가을에서 겨울 첫눈이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후략)
[기사]『KMDB』2013.04.02. 망부석 (1963,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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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For My Husband (1963, 임권택) (2013-04-02) [기사링크]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씨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종종 어른들로부터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되었던 1963년 10월에 대해서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로부터 2년 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있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2013년 겨울이 끝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에 쓰고 있다. 말하자면 50년 전의 일. 박정희라는 이름은 당신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 이름인가, 혹은 가까이 있는 이름인가. 나는 유령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너무 가까이 있는 이름, 멀리 떠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응답하는 이름, 그래서 오늘밤 다시 나타난 이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 임권택의 <망부석>은 그 해에 만들어졌다. 부디 오해하지 말 것. 나는 여기서 역사의 감각이라는 문제를 꺼내들 생각이다. 그런 다음 당신을 1963년에 데려다 놓고 싶다. 그때 조선시대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을까, 혹은 멀리 있었을까. (후략)
[기사]『무비위크』2013.03.22.571호. 우리가 사랑한 엔딩 신 – 아비정전
[ 무비위크 > 매거진 > 스페셜이슈 ]
[movieweek+] 우리가 사랑한 엔딩 신 (기사링크)
엔딩 신을 마주하는 순간. 영화는 그제야 관객의 삶 속으로 완벽하게 스며듭니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비로소 뭉클한 감동, 아련한 추억,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눈, 삶을 이어갈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되죠. 우리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헤어짐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하니까요. [무비위크]가 사랑하는 영화인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영화의 엔딩 신은 무엇입니까? 이별의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만남의 기약을 전하는, 우리가 사랑하는 엔딩 신을 모두 모았습니다
09. 아비정전 (기사링크)
1990 |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류가령 양조위
갑자기 영화가 중간에 그냥 끝나버렸다.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아니, 어쩌자고 여기서 영화가 끝나버린단 말인가. 명백히 이야기는 더 남아 있었다. 그것도 한참이 더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아직도 왕가위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을 지금은 사라진 중앙극장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처음 본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물론 아비(장국영)는 죽었다. 하지만 그 곁에 있던 경찰관(유덕화)은 어떻게 할 참인가. 아직 홍콩에 남아 있는 수리진(장만옥)은 어떻게 견뎌야 할까. 그를 찾아 떠돌고 있는 루루(류가령)는 그의 죽음을 알게 될까. 그녀를 짝사랑하는 아비의 친구(장학우)는 언제까지 그녀를 기다릴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영화는 갑자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가 좁은 방에 등장한 다음 카드를 챙겨들고 옷을 빼입고 난 다음 불을 끄고 나간다.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양조위) 영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왕가위 감독을 만날 때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매번 다르게 대답했다. 그것이 중간에 끝나버린 영화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영화는 왕가위의 소망과 달리 후편을 찍지 않았다(혹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약도 없는 이 영화의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비위크]의 소식이 지금 내게 그렇다. 나는 여기서 끝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기약 없는 기다림일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당신들에게 할 수 있는 예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당신들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3년 3월 낮과 밤의 시간이 같은 춘분에 정성일(영화평론가) 씀.
[기사]『KMDB』2013.03.12. 나는 왕이다 (1966, 임권택)
[ KMDB > 영화지식 > 전문칼럼 > 임권택x101;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
나는 왕이다 I Am a King (1966, 임권택) (2013-03-12) [기사링크]
권투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 나는 <나는 왕이다> 를 본 다음 잠시 멈추어 섰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1986년 서울에서 제10회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고, 그때 25개의 종목을 10개의 소주제로 해서 9명의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나는 왕이다>를 찍은 다음 20년 후의 일이다. 그때 임권택과 이두용은 그 중 여섯 번째 편인 ‘힘과 기’를 공동 연출하였다. 여기서 복싱과 레슬링, 역도, 펜싱, 태권도를 중심으로 한 격투기를 다루었다. 이때 임권택은 권투만을 찍었다. (나는 이 영화를 편집 직후에 볼 기회가 있었는데 완성 이후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임권택은 수많은 스포츠 중에서 오로지 권투만을 영화로 다루었다. (후략)
[기사]『영화천국』2013.03~04.Vol.30. 그들이 주목한 젊은 시네아스트 –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발견
영화천국 > 2013.02.28.Vol.30 [웹링크], [PDF], [개별기사(정재훈), 개별기사(리우자인)]
아마도 12년 전, 그러니까 막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영화비평가들은 모두들 앞다투어서 새로운 시네아스트들의 명단을 제시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벌써 많은 이름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채 10년을 견디지 못했거나 비평가들이 잘못 보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영화는 단지 그들의 재능만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이다. 종종 산업은 그들을 굴복시키거나 혹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든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화가 배급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그들은 거의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그들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다. 나는 디지털 시대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그렇게 말소돼버리는 이름들의 작가주의라고 생각한다. 자꾸만 꺼져가는 별빛. 우리는 이걸 방어해야만 한다. 이건 우리의 임무다. 내가 지금 호명하는 두 사람은 바로 그 말소의 작가주의라고 불릴 만한 명단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이름이다. (후략)
[기사]『경향신문』2013.03.11.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박찬욱의 ‘스토커’는 할리우드에 보내는 예고편
[경향신문 > 오피니언 전체 >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박찬욱의 ‘스토커’는 할리우드에 보내는 예고편 (기사링크)
입력 : 2013-03-10 21:25:01ㅣ수정 : 2013-03-10 21:25:01
“당신은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자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소로서의 할리우드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 관심은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이 말은 박찬욱이 아니라 앨프리드 히치콕이 1939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레베카>를 찍은 다음 트뤼포의 질문에 한 대답이다. 아마도 이 말을 박찬욱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심정으로 몇 번이고 이 말을 새겨가면서 박찬욱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문제를 생각했을 것이다. <스토커>는 박찬욱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찍은 첫 번째 영화이다. (후략)
[책] 주성철,『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흐름출판, 2013.04.01

[ 추천사 ]
물론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장국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장국영과 함께 시작해서 그와 함께 4월 1일에 끝난 홍콩영화 포스트 뉴웨이브의 한 시대의 기록으로도 읽혀야 할 것이다. 종종 사적인 감정과 때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은 페이지에 출몰하면서 오로지 홍콩영화에 진정으로 애정을 바쳤던 이만이 가능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 영화 제목들을 불러올 때, 당신은 ‘잠시 잊었던’ 사랑 그리고 ‘지금 막 되찾은’ 사랑을 느낄 수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당신과 기억을 공유했던 이가 함께 음미하는 책이다. 그러니 부디 책을 읽기 전에 눈을 감고, 잠깐 우리 곁에 왔다가 떠나가기 전 미처 날개를 챙기지 못하고 창문 위로 날아가다가 그만 추락해버린 그 이름과, 그리고 그가 남겨놓은 영화 제목들을(적어도 10편) 소리 내어 불러보시길.
—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카페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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